스테이블코인은 대표적으로 USDC·USDT처럼 ‘1달러에 묶인 안정성’을 내세우며 글로벌 금융 인프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구조별로(법정화폐 담보형, 암호자산 담보형, 알고리즘형) 장단점과 리스크는 크게 다르다. 이번 글에서는 투자자·사업자·정책 담당자의 시선에서 과거 사례와 각국 규제 흐름을 함께 살펴보며, 스테이블코인을 더 깊이 이해해보고자 한다.
1. 스테이블코인이란? 안정성의 약속과 그 한계
1.1.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화폐의 3대 기능 관점에서 본 정의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이 높은 가격 변동성을 지닌 가상자산과 달리, 특정 자산의 가치에 연동되어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자산이다. 그 가치는 주로 미국 달러, 유로, 엔화와 같은 법정화폐 또는 금, 원자재 등 실물자산에 고정된다. 이러한 가격 안정성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생태계 내에서 ‘디지털 현금’ 또는 ‘디지털 달러’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투기적 성격이 강한 기존 암호화폐와 명확히 구별되는 지점이다. 일본 엔화에 페깅된 JPYC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은 그 특성상 ‘디지털 머니 유사형’으로 분류되며, 발행자는 일본의 은행업 및 자금 이동업 규제를 적용받는다.
전통 경제학에서 화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첫째, 재화나 용역의 가치를 나타내는 가치 척도(Unit of Account)의 수단, 둘째, 재화나 용역을 교환하는 매개체인 교환 매개(Medium of Exchange)의 수단, 셋째, 경제적 가치를 미래로 옮기는 가치 저장(Store of Value)의 수단이다. 기존의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비유되며 주로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면,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안정성을 바탕으로 교환 매개 수단과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특히 투자자들이 가격 변동성이 큰 자산(예: 비트코인)으로 수익을 얻은 후 이를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하여 수익을 보호하는 사례는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시장 내에서 안정적인 피난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가상자산이 해결하지 못했던 실용적 결제 및 거래의 영역을 담당하며, 가상자산과 전통 금융을 잇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2. 스테이블코인 트릴레마: 가격 안정성, 탈중앙화, 자본 효율성의 역설
스테이블코인 트릴레마는 경제학의 불가능의 삼각정리에서 영감을 얻어 멀티코인 캐피탈(Multicoin Capital)이 주창한 가설이다. 이는 어떠한 스테이블코인도 다음의 세 가지 가치를 모두 만족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첫째, 가격 안정성(Price Stable)으로 법정화폐와 동일한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 탈중앙화(Decentralized)로 중앙화된 주체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것이다. 셋째, 자본 효율성(Capital Efficient)으로 자본의 효율적 사용을 의미한다.
이 분석 틀은 각 스테이블코인 유형이 어떤 가치를 희생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대신 중앙화된 발행사에 의존하므로 ‘탈중앙화’를 포기한다. 반면, 암호자산 담보형은 ‘탈중앙화’를 추구하지만, 변동성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과담보를 요구하므로 ‘자본 효율성’이 떨어진다. 또한, 알고리즘형은 담보 없이 ‘탈중앙화’와 ‘자본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 충격에 취약하여 ‘가격 안정성’을 잃을 위험이 매우 크다. 이러한 트릴레마는 각 스테이블코인 모델이 가진 근본적인 구조적 한계를 명확히 설명하는 분석 도구로 기능한다.
1.3.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유형별 심층 분석
1.3.1. 법정화폐 담보형 (Fiat-Collateralized)
가장 보편적인 스테이블코인 유형이다. 이는 미국 달러와 같은 실제 법정화폐를 담보로 두며, 발행량만큼의 자산을 은행 등에 예치하여 1:1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다. 이 유형은 구조가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높은 안정성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테더(USDT)와 USD코인(USDC)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모두 1달러 가치 연동을 목표로 하지만, 신뢰도를 확보하는 방식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테더는 준비금의 일부를 미국 단기 국채로 보유하여 안정성과 유동성을 확보하고, 분기별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이를 공개한다. 반면 USDC 발행사인 서클은 발행량에 상응하는 자산을 현금 및 현금성 자산으로 1:1 예치하며 매달 회계 감사를 통해 이를 확인받는다. 서클 역시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가상자산의 핵심 철학인 탈중앙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 안정성이 궁극적으로 발행사의 준비금 관리와 투명성에 대한 신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전통 금융의 신뢰 모델을 차용하고 있다.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은 이론적으로는 1달러에 고정되어 있지만, 실제 투자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한국과 같은 시장에서는 달러/원 환율이 직접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하면 스테이블코인 가격도 원화 기준으로 동일하게 상승한다. 예를 들어, 달러 환율이 1,200원에서 1,350원으로 오르면,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USDT 가격 역시 1,200원대에서 1,350원대로 움직인다. 즉, 글로벌 시장에서는 1달러와 동일하지만, 국내 투자자에게는 환율 변동이 곧 자산 가치의 변동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다만 일부 투자자들은 거래소(CEX)에서 나타나는 USDT 가격 추이와 달러/원 환율 그래프를 비교하며 혼동하기도 한다. 이는 표현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데, 일반적인 시세 그래프(추이형 차트)와 통계적 요약을 보여주는 상자·수염(Box-Whisker) 그래프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종가 기준으로 거의 동일한 흐름을 보이며, 괴리가 크게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차이가 발생한다면 이는 대체로 특정 시기 국내 시장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긴 김치 프리미엄 같은 현상, 즉 투자자 자금이 특정 거래소로 몰릴 때 나타나는 일시적 가격 왜곡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 시장은 자본 이동 제한과 온·오프램프 규제 등의 제약으로 인해 글로벌 시세보다 USDT가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특수 현상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같은 스테이블코인이라도 체감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이라고 해서 항상 동일한 가치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며, 투자자가 활동하는 시장 환경에 따라 가격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1.3.2. 암호자산 담보형 (Crypto-Collateralized)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방식이다. 담보로 사용하는 자산(예: 이더리움,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발행할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보다 더 많은 담보를 예치하는 과담보(over-collateralization)를 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메이커다오(MakerDAO)의 다이(DAI)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이의 발행, 소각, 청산 등 모든 과정은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온체인에서 투명하게 진행된다. 사용자는 메이커 볼트(Maker Vault)라는 스마트 컨트랙트에 이더리움 등의 담보를 예치하고 다이를 발행받으며, 담보의 가치가 일정 비율(예: 110%)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청산 절차가 시행된다. 이러한 청산 메커니즘은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장치이다. 다이의 초기 단일 담보 시스템은 2019년 11월부터 다중 담보 시스템으로 변경되었다. 이 유형은 탈중앙화된 환경에서 운영되고 투명한 담보 관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담보 가치의 변동성으로 인한 리스크와 과담보로 인해 자본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진다.
1.3.3. 알고리즘형 (Algorithmic)
특정 담보 없이 자동화된 알고리즘에 기반한 수요와 공급 조절을 통해 가격을 안정화하는 방식이다. 가격이 1달러보다 높으면 스테이블코인 공급량을 늘리고, 낮으면 공급량을 줄여 가격을 맞춘다. 테라(Terra)의 UST가 대표적인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었다.
알고리즘형은 담보 없이 완전한 탈중앙화와 높은 자본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극단적인 시장 변동 시 시스템이 실패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담보가 없어 시장의 신뢰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신뢰가 무너지면 가격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치명적인 한계에 노출된다. 2022년 발생한 테라USD(UST) 붕괴는 이러한 시스템적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UST의 가치를 보증하는 자매 코인 루나(LUNA)의 무한대에 가까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결국 붕괴에 이르렀다.
| 구분 | 법정화폐 담보형 | 암호자산 담보형 | 알고리즘형 |
| 담보물 | 법정화폐 (달러, 유로 등) | 암호화폐 (이더리움, 비트코인 등) | 없음 (자매 코인 또는 알고리즘 기반) |
| 중앙화 여부 | 중앙화 (발행사 존재) | 탈중앙화 (스마트 컨트랙트) | 탈중앙화 (알고리즘 기반) |
| 작동 방식 | 예치된 담보금만큼 1:1 발행 | 과담보 예치 후 스마트 컨트랙트 발행 | 알고리즘에 따른 공급량 조절 |
| 장점 | 높은 가격 안정성, 이해하기 쉬운 구조 | 탈중앙화, 투명한 담보 관리 | 자본 효율성, 탈중앙화 |
| 단점 | 탈중앙화와 상충, 발행사 리스크 | 담보 가치 변동성 리스크, 낮은 자본 효율성 | 시스템 실패 위험, 시장 신뢰에 전적으로 의존 |
| 대표 사례 | USDT (테더), USDC (서클) | DAI (메이커다오) | UST (테라) |
2. 어떻게 유지될까? 스테이블코인 핵심 메커니즘과 운영 구조
2.1. 법정화폐 담보형의 발행 및 상환 구조: 신뢰와 규제의 딜레마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유통 중인 코인 발행량에 상응하는 1:1 비율의 지급준비금(reserves)을 항상 보유해야 한다. 이 준비자산은 현금, 연방준비은행 예치금, 만기 93일 이하의 미국 국채 등 고유동성과 안정성이 확보된 자산으로 제한된다. 발행인의 고유자산과 준비자산은 분리 보관되어야 하며, 재담보와 같은 재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발행인은 이용자의 상환 요청 시 즉시 상환할 의무를 지닌다. 만약 발행인이 파산하는 경우에는 지급준비금에 대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비례배분 원칙 및 우선변제권이 부여된다. 이러한 구조는 스테이블코인의 가격 안정성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안전장치이다. 그러나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의 구조는 전통적인 부분 지급준비제 은행 모델과 유사한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발행사의 준비금 보유 현황과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경우, 대규모 상환 요청, 즉 ‘코인런(Coin-run)’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경우 코인런이 발생하고, 이는 단기자금시장 충격과 은행 유동성 리스크를 통해 금융시스템 전체로 위험이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는 개별 프로젝트의 실패를 넘어 전통 금융 시스템에까지 리스크를 전이시킬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지적하는 것이다.
2.2. 암호자산 담보형의 스마트 컨트랙트 작동 방식: 온체인 시스템의 정교함
암호자산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메커니즘은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이(DAI)의 경우, 사용자는 ‘메이커 볼트(Maker Vault)’라는 스마트 컨트랙트에 이더리움(ETH) 등의 담보를 예치하고, 거버넌스에 의해 정해진 비율만큼의 다이를 발행받는다. 담보를 되찾으려면 발행받은 다이를 상환해야 한다. 다이 예치 보상(DSR, Dai Savings Rate)은 다이의 시장 가격을 1달러에 맞추기 위한 중요한 경제적 인센티브이다. 만약 다이 가격이 1달러보다 높으면 DSR 비율을 높여 수요를 자극해 시장가격을 낮추고, 반대로 가격이 낮으면 DSR 비율을 낮춰 수요를 감소시켜 시장가격을 올린다.
암호자산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를 추구하지만, 외부 자산의 가격 정보를 온체인으로 가져오기 위해 오라클(Oracle)이라는 지정된 외부 집단을 신뢰해야 한다. 오라클은 외부에서 수신한 가격 정보를 온체인 네트워크에 전파하고, 이 정보들을 종합하여 중간값을 반환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탈중앙화된 시스템이라도 외부의 중앙화된 정보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또한, 청산 비율과 같은 핵심 매개변수는 거버넌스 토큰(MKR) 보유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는 시스템 운영이 소수의 거버넌스 참여자들의 의사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중앙화된 거버넌스’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2.3. 개인 투자자의 스테이블코인 거래 및 상환 과정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인에게 직접 상환하기보다는, 가상자산 거래소나 P2P 플랫폼을 통해 거래하거나 다른 자산으로 스왑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이는 발행인에게 직접 상환을 요청하는 것이 주로 대규모 자산 운용사나 기관 투자자에게 해당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 투자자들은 P2P 플랫폼에서 테더(USDT)를 은행 송금이나 온라인 지갑, 기프트 카드 등 500가지 이상의 결제 수단으로 판매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규제 법안은 발행인에게 이용자 요청 시 즉시 상환 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며, 상환 정책을 수립하고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개인 투자자는 주로 거래소라는 중개자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고 거래한다. 이로 인해 발행인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개인이 이용하는 거래소의 유동성 문제나 파산은 개인의 상환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법제화가 진행되더라도 개인 투자자가 ‘중개자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을 지급수단으로 매입한 소비자는 시세 급락이나 환불 불가 상황에서 정부나 금융감독원의 구제조치를 받기 어렵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3. 스테이블코인 안전할까? 주요 리스크와 시장 불안정성
3.1. 디페깅(De-pegging) 리스크 및 코인런(Coin-run)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본질적인 위험은 디페깅(De-pegging)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목표 자산(예: 1달러)과의 연동(peg)이 깨져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디페깅에 대한 우려로 인해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스테이블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려는 대규모 인출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를 코인런(Coin-run)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태는 발행사의 준비금 불투명성, 유동성 부족,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시장의 신뢰 붕괴로 인해 발생한다.
3.2. 주요 리스크 사례 연구: 이론이 현실이 된 순간들
3.2.1. 테라/루나(UST/LUNA) 사태 (2022년)
2022년 5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UST의 1달러 페깅이 깨지면서 UST의 가치를 보증하는 자매 코인 루나(LUNA)의 가격이 폭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근본적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건의 발단은 디파이 유동성 풀에서 대규모 UST가 매도되면서 시작되었다. UST가 1달러 가치를 잃자, UST를 매도하고 LUNA를 소각하려던 투자자들의 차익거래 유인이 사라지며 시스템의 안정화 기제가 작동을 멈췄다. 오히려 UST의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UST를 소각하고 LUNA를 발행하는 메커니즘이 역으로 작용하여 무한정에 가까운 LUNA가 발행되었고, 이는 LUNA 가격의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UST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가 비트코인 준비금을 소진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하면서 시장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테라 블록체인은 블록 생성을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고, 전 세계 주요 거래소에서 UST와 LUNA가 상장 폐지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실패를 넘어, 스테이블코인 전반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크게 흔들고 미국 정부 당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의를 촉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3.2.2. 테더(USDT) 2018년 디페깅 사태
알고리즘형의 실패와는 별개로, 법정화폐 담보형 역시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2018년, USDT 발행사인 테더의 준비금 보유량에 대한 불투명성 논란이 제기되면서 USDT의 가치가 0.95달러까지 하락하는 디페깅이 발생했다. 뉴욕 검찰 조사 결과, 테더가 때때로 유통 중인 코인만큼 충분한 달러를 보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유동성 위기와 투자자 불신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알고리즘 모델의 실패가 아닌, 법정화폐 담보형의 중앙화된 발행사가 가진 ‘투명성’과 ‘신뢰성’ 문제가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3.2.3. USDC의 주소 동결 사건 (2022년)
2022년 8월, 미국 재무부가 믹싱 서비스인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를 제재 목록에 올리자, USDC 발행사 서클(Circle)은 규제 당국의 지침에 따라 토네이도 캐시와 연관된 특정 지갑 주소의 USDC를 동결했다. 이 사건으로 토네이도 캐시와 연관된 지갑에 있던 4억 3,000만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가 동결되었다. 이 사건은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이 규제 기관의 명령에 따라 특정 자산을 검열하고 동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가상자산의 핵심 철학인 탈중앙화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심지어 에이브(AAVE), 유니스왑(Uniswap)과 같은 대표적인 탈중앙화 금융(DeFi) 프로토콜조차 해당 주소와의 암호화폐 송수신을 금지했다는 사실은, 규제와 중앙화된 주체의 개입이 온체인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 스테이블코인 | 사건명 | 발생 시기 | 주요 원인 | 결과 |
| USDT | 2018년 디페깅 | 2018년 10월 | 발행사의 지급준비금 부족 및 불투명성 논란 | 가격이 0.95달러까지 하락, 투자자 신뢰 하락 |
| UST | UST/LUNA 붕괴 사태 | 2022년 5월 | 알고리즘 기반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 및 하이퍼인플레이션 유발 | UST 및 LUNA 가치 99% 이상 폭락, 시장 신뢰 붕괴 |
| USDC | 토네이도 캐시 주소 동결 | 2022년 8월 | 미국 정부의 금융 제재 및 USDC 발행사의 주소 동결 조치 | 탈중앙화 철학과 중앙화된 통제의 모순 부각 |
4. 글로벌 규제 동향, 스테이블코인의 다음 무대는 어디로?
4.1. 미국 ‘지니어스 법안’의 분석
2025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시행된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한 미국 최초의 연방 차원 규제 법안이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규제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둘째, 발행업자는 발행한 모든 코인에 대해 달러나 미국 국채를 1:1 비율로 보유해야 한다. 셋째, 준비자산 보유 현황을 매월 공개해야 한다.
이 법안은 단순한 리스크 관리 차원을 넘어선 전략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게 함으로써, 최근 폭등한 국채 금리를 낮추고 정부의 이자 부담을 덜려는 의도가 있다. 미국 재무장관은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시 미국 국채 수요가 약 2조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를 통해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중국과의 ‘화폐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거시적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이는 가상자산이 더 이상 독립된 생태계가 아니라, 전통 금융 시스템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4.2. 유럽연합(EU) ‘MiCA’ 규제의 분석
유럽연합은 2024년 12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포괄적 가상자산 규제 기본법안인 MiCA(Markets in Crypto Assets Regulation)를 전면 시행하였다. MiCA는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EMT)과 자산준거토큰(ART)으로 구분하여 규제한다. 발행자는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준비자산을 현금이나 국채와 같은 고유동성 자산으로 1:1 비율로 유지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테라 사태의 실패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규제 내용이다. MiCA는 UST와 같은 내재 담보형(endogenously collateralized)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을 2년간 금지하는 등, 알고리즘형에 대한 규제가 특히 엄격하다. 또한, MiCA는 소비자 보호, 자금세탁 방지(AML/CFT), 시장 조작 방지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UST 사태와 같은 시장 실패에 대한 직접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을 포함하며, 미국의 규제 접근 방식과 차별점을 보인다.
4.3. 한국의 규제 논의와 정책적 과제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기본법안’이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은 자기자본 5억 원 이상의 요건만 충족하면 은행뿐만 아니라 비은행 회사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대해 여러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통화 주권을 훼손하거나, 국내 자본이 해외로 대거 유출되는 외환 시장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민간 발행을 허용할 경우 다수의 ‘민간 화폐’가 생겨나고 그 가치가 서로 달라 시장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과 ‘코인런’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논의는 미국이 달러 영향력 확대를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려는 전략과는 달리, 자국 화폐인 ‘원화’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독자적인 정책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 구분 | 미국 (지니어스 법안) | EU (MiCA) | 한국 (디지털자산기본법안) |
| 주요 목적 | 달러 패권 강화, 국채 수요 증대, 금융 시스템 통합 | 소비자 보호, 금융 안정성, 시장 투명성 확보 | 통화 주권 및 금융 안정성 확보 |
| 발행인 요건 | 규제 기관 승인 필수 | 사전 승인 필수 (은행, 전자화폐기관 등으로 제한) | 자기자본 5억 원 이상 (비은행 발행사 허용) |
| 준비금 의무 | 달러 또는 미 국채 1:1 비율 보유, 매월 공개 | 고유동성 자산 1:1 비율 보유, 정기 공시 | (논의 중) 지급준비금 보유 및 상환 정책 마련 |
| 감독 기관 | 연방 규제 기관 또는 주 규제 기관 | 유럽은행감독청(EBA) 등 | (논의 중) 정부 및 금융당국 |
| 주요 우려사항 | 금융시장 혼란, 불법 자금 유출 | 자금 세탁, 시장 조작 등 | 통화 주권 훼손, 외환 시장 충격, 코인런 |
5. 결론 : 스테이블코인, 새로운 기회일까 규제의 덫일까?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자산을 넘어, 글로벌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과 환율 불안정이 심한 국가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달러를 대체하는 가치 저장 및 교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국제 송금·전자상거래·디파이(DeFi)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는 동시에 정책·규제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패권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고, 유럽연합은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성에 방점을 찍고 있으며, 한국은 통화 주권과 외환시장 안정이라는 특수한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정치·경제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 관점에서의 이해이다.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는 고객은 투자자, 송금 이용자, 환위험을 회피하려는 자산 보유자, 디파이 참여자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된다. 이들의 니즈와 행태를 분석하는 것은 향후 시장 기회 발굴뿐 아니라, 적절한 정책 설계와 리스크 관리에도 필수적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안전 자산’이면서 동시에 ‘정책 자산’이다. 글로벌 사업자와 정책 입안자 모두가 고객 세분화를 바탕으로 시장 흐름을 읽어내야만, 스테이블코인이 진정한 의미에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금융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